대강절의 여정: 또 주시는 평화와 빵의 선물
대강절의 묵상
“평화는 빵 처럼 매일 만들어야 한다” Bromley Oxnam감독의 말이다.
본문: 이사야서 2장 1-5절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것이요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부터 나올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 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 하리라.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 의 빛에 행하자”
평화와 빵
본문에 따르면 이사야 선지자는 비전을 보았다. 도구의 쓰임새가 바뀐다. 전쟁의 수단이 농사의 수단으로 변모한다. 전쟁에 쓰이는 도구와 노동이 양식을 만드는 도구와 노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하나님은 명령한다.
묘하게도 다른 선지자도 똑 같은 환상을 보았다. 전쟁의 도구를 평화의 도구로 변화시킨다는 환상이다. 미가 4:3에 보면 하나님이 “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 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라고 되어있다.
이 두 선지자의 환상은, 우리 모두 한 사람 한사람이 마음의 무장을 풀고, 하나님이 계시는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면, 모든 열방이 식량부족, 기아, 죽음, 영양실조 등 사회악을 영속화하는 사회제도와 싸우기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다같이 다음과 같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 칼을 보습으로
* 창을 낫으로
* 적개심을 심는 대신 평화를 심고
* 폭력의 문화를 평화의 문화로
* 전쟁을 만드는 대신 양식을 만들도록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평화와 살림(nourishment)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데 앞장 서기를 원하신다. 이것은추수, 즉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에로의 초대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돌보는 양육자가 (care-takers) 되는 것이다. 대강절은 평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평화에 우리를 헌신하는 시간이다.
여성과 평화와 빵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케냐타 대학의 Mary Getui교수는 아프리카 문화에서는 여성들이 일차적인 생명의 양육자이며 식량 생산자이자 공급자이므로, 아프리카에서는 전쟁 중에도 여성들이 평화를 협상하고 화해를 주도한다고 말했다.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흔히 전쟁, 강간, 성 노예제도, 유괴 등의 희생자가 되기 때문에 평화와 일상 생활의 정상화를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쟁과 달리 양육하는 삶은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고 또 나누어 먹는 삶이다. 음식을 만들고 평화를 만드는 일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깨어있지 않으면 이 둘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 노예제도, 강제노동 등은 평화로운 시기에도 일어나지 않는가. 창을 보습으로 변화시킨 다고? 성탄의 계절에나 품어보는 제멋대로의 상상은 아닐까? 이런 느낌을 표현하는, 자못 충격적이고 아주 딴판인 본문이 있다.
감금된 평화와 상한 빵
마치 요술쟁이가 눈을 내리게 하듯, 창과 칼을 보습과 낫으로 바꾼 새로운 텃밭의 평화는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빵처럼 매일 만들어져야 한다.
선지자 요엘이 전한 말씀,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요엘 3:11 )는 오늘 이사야서 본문과는 얄궂게도 정 반대이다. .
전쟁이 끝난 후 외관상 평화의 시기처럼 보이는 때에도 폭력은 암암리에 존재 할수 있다. 전쟁의 패배자들은 승리한 군대를 따르던 상인들에게 상품으로 팔렸다. 제비를 뽑아 어린아이들까지도 정복자 군대에 의하여 상품화 되었다. 요엘은 국경을 넘어 밀거래되던 아동 노예 , 인신매매에 반대하는 운동을 호소하고 있다.
UN마약과 범죄 당국의 보고에 의하면, 오늘날도 인신 밀매매의 범죄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범죄라고 한다. Human Rights Watch 발표에 의하면, 2억에 달하는 이주 노동자의 절반은 여성들이며, 그들은 종종 인권 침해를 경험한다고 한다. Human Rights Watch의 웹사이트 hrw.org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인신매매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주 노동 자들에게 허다히 일어나고 있다.
선지자 요엘의 호소는, 약한 자들의 이러한 인신매매에 대해 비밀 조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예언자적 호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약한 자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풍요과 평화의 계절을 누리는 우리들은 항상 경각심을 갖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국내 에서건 해외에서건 상관없이 불의, 노예제도, 강제 노동, 인신매매 등에 항거해야 한다. 위험에 처한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처지를 우리가 항상 주의해서 지켜보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근심이라는, 오래되어 상한 빵을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
* 평화와 양식
*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평화와 정의
* 양식을 생산하는 자들과 그것을 먹는자들을 위한 평화
* 우리 가운데 약한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해야 될것이다.
빵 굽는 집에서 평화가 탄생하다
대강절은 빵-집이라는 뜻의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 평화의 왕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우리 마음 속에 자리를 만드는 시간이다. 우리 기독교의 원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왕이다.
하나님의 평화는 가해자나 희생자나 다같이 그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평화는 스스로 평화를 포기한 자들이나, 악의 세력에게 평화를 빼앗긴 자들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한 자들, 또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주신 평화를 남에게서 빼앗아 가는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일은 회개이다.
대강절은 우리의 모든 방어와 전쟁의 무기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평화의 비전과 화해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종류의 무장인 영혼의 갑옷도 벗어버리는 것이다. 깨어서 착취를 당하는 약한 자들을 구하려는 하나님의 사명에 동참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를 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 6:12)”고 하였다.
대강절은 우리가 깨어 주가 오신다는 소식에 귀를 귀울이며,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찾아보는 시간이다.
베들레헴에 있는 루터교 교회 Raheb 목사는 종교 개혁을 이끈 Martin Luther의 말을 인용하여: “지금 세상의 끝이 와서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고, 터널 끝에 햇빛이 비치지 않을지라도, 나는 오늘 - 내일은 너무 늦을 테니까 - 정원(세상)에 나아가 감람 나무를 심겠다”고 한다.
대강절에 해야 할 일은 평화와 양식이 없는 곳에 감히 감람 나무를 심고 양식의 집(베드-레헴)을 다시 짓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기 도
평화이신 하나님, 이 대강절에, 그리고 언제나, 평화의 품에 안아주소서. 저희들을 주님의 인도와 은혜 안에서 살게 하시고 악한 사회 구조 때문에 수난당하고 억압 받는 모든 영혼들에게 평화와 구원을 가져오는 일에 우리가 나설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